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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평] 내가 아는 나를 찾는 길

sodayeong 2020. 3. 29. 16:56

여행의 이유 - 김영하

 

 

개강 날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은 책.
당시엔 별 내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e-book으로 다시 보니까 별거 아닌 게 재밌어서 종이책으로 주문해 다시 읽어보니 김영하 작가가 문득문득 정의한 "여행"은 공감 가기 충분하고 넉넉하다.



우리는 떠난다. 그곳에 계속 히 머물러 있고 싶어 하고, 직접 내 몸으로 경험하려 한다. 나에게 여행이란 일상에서의 탈출구, 도피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이과에서 무난하게 버티고 있는 중이었는데, 항상 답답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고3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이 됐었던 것 같다. 점심시간에 진에어 얼리버드 티켓이 뜬 걸 보고 서둘러 칠판에 붙어있는 학사일정을 보고, 기말고사가 끝나고 비어있는 (흔히 꿈, 끼 탐색주간이라 불리는) 기간에 오사카행 비행기를 예매했다. 그때 에피소드로는, 카드에 돈이 없어서 엄마 아빠한테 급히 연락했는데도 전화를 안 받았었다. 점심 먹고 올라온 친구 민지에게 얼리버드라 자리 뺏길 수도 있다는 말을 하니까, 자기 엄마에게 연락해 보겠다고 했다. 얼마 안 지나서 민지 어머니는 내 통장에 입금해주셨고(ㅋㅋ), 다행히도 비행기 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 나고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떠난 오사카 여행이었다. 시험공부하기 싫을 땐 구글맵에 별도장을 다 찍어놓고 설레어하는 걸 좋아했다.

학교에는 현장체험학습 자유여행이라 적어냈고, 엄마 아빠 사인도 받아 제출했다.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 드는 부분인데 우리 엄마 아빠는 너무 쿨하게 자기들 기념품도 많이 사 오라면서 잘 다녀오라고 했다. (엄마는 언니한테 내가 많이 성장해서 올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나고 엄마한테 문득 물어보니까 엄마는 내가 말린다고 안 할 애도 아니라 잘 다녀오라고 했다고 한다. 역시 쿨한 엄마..

 

 

 

 

나에게 오사카는 모든 게 신기했다. 공항에 내려서 처음 맡은 깨끗한 먼지 냄새는 여행 내내 맴돌았다. 이게 내 일본에서 남은 가장 큰 기억이고 이후에도 일본에 방문했을 때 똑같은 냄새를 맡게 되었을 때는 그대로 있다는 사실에 안정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하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랜 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여행의 이유 51p

나는 후기를 많이 보지 않고 가는 여행이 더 즐거웠다. 타인의 견해가 주입되면 색안경을 꼈는지 난 그냥 그랬는데 후기는 대단한 것처럼 보였다. 남과 다른 감정을 느꼈다고 해서 일부러 즐거운 척(?)을 할 필요는 없다. 별로였으면 별로였던 데로 에피소드가 되고 기억되는 거지 손해 보는 일은 없으니까. 덕분에 내 취향을 잘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내가 하고 싶은 여행 스타일과 즉흥, 그곳에서의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기대한 버터 맥주는 너무 맛 없어서 한 입 먹고 버렸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여행의 이유 82p.

 

경험은 중요하고 경험으로 알게 된 '나'는 더더욱 중요하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의 취향을 알아가는 즐거움은 크게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목적과 취향은 다양하겠지만, 나는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떠난다. 여행지에서의 나는 한국에서보다 자유로워야 하며 A-Z까지 모두 내 선택으로 결정되어 일어난다.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도 즐겁고 하다못해 볕 좋은 곳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도 즐겁게 느껴진다.


김영하 작가는 알쓸신잡 프로그램에서 "모든 여행은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게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라 말했는데, 공감되는 말이었다. 여행을 하고 방안에 누워서, 아니면 한참 지나서 여행을 되돌아볼 때, 18살의 나는 단단하기 그지없었고 한 번 이끌어낸 용기(아니면 깡)는 나를 다른 곳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다행히 오고 싶던 학교에 왔다. 18살을 기점으로 매년 혼자 가는 여행을 하고 있는데, 종강 후 가는 제주도 여행은 취소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쉽지만 내년 상반기에는 짧게(이왕 갈 거면 제주도나 강릉..으로 )
1박이라도 할 수 있으면 어디든 다녀오고 싶다.

 

 

 


이외에도 나는 <한 달에 한번 내가 좋아하는 거 하기>를 실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망원동 가서 젤라토 먹기, 카페 가서 맛있는 케이크 먹기(진짜 맛있어야 함), 아이패드로 하루 종일 놀기 등등 단순하면서도 내가 왜 살아가는지 (?!!) 다시 알게끔 해준다. 소소한 재미 나에게 투자하는 온전한 시간은 나에게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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