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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어린왕자

sodayeong 2020. 7. 28. 01:41

이번(지금은 지났지만)학기에서 즐겁게 들은 교양수업이 있는데요.

이 수업은 슬로우 리딩 방식으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읽는 수업이었어요.

 

슬로우 리딩 말 그 자체로 글을 천천히 읽으면서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보고, 바꿔 생각해 '나라면 어땠을까' 스스로 생각해보고, 질문지에 대한 응답을 짝과 토론형식으로 진행되었어요. 

 

마지막 과제는 <어린왕자> 감상문을 써보는 내용이었는데,

교수님 말 그 자체로 저에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감상문'이 된 것 같아 티스토리에도 남겨보려 합니다.

 

 

 

 

 


 

1. 낯선 곳에서의 만난 이는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더라 

 

서술자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막 한 가운데 남겨지게 됐다. 사고, 사막, 혼자. 누구는 이 셋 중 하나라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근데 이 세 개가 동시에? 사막을 헤매다 깜빡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땐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타인은 다름 아닌 어린왕자. 대뜸 양을 그려달라며 자신의 소개를 뒤로한 채 부탁을 해온다. '어떻게 해줘. 이건 내가 생각한 게 아니야. 이렇게 그려줘.' 서술자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낯선 이의 부탁을 들어주고 있다.

 

통성명이라는 인사치례를 생략하고 질문 폭격기에 맞은 서술자는 어쩌면 어린왕자가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으로 서술자를 평가 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타인을 만날 때 자연스레 평가를 하게 된다. 그 사람의 인상과 태도와 말투 또는 내가 어떤 질문을 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답변을 해준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서술자 또한 어렸을 때 보물 1,2호를 그렸던 것처럼 나만의 해석할 수 있는 무언가'. 하지만 타인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가득 차 그림을 보여주고 다니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낯선 환경에서 혼자 남겨지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장을 읽고 나는 18살 때 혼자 떠났던 오사카 여행이 생각났다. 그 땐 어디서 나온 깡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낯선 곳에서의 나를 시험하며 경험해보고 싶었다.

나는 야경이 멋있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전망대에 가기 위해 구글 맵으로 좌표를 찍어가며 헤매었지만 결과는 한 시간 동안 곳곳을 헤매었다. 나는 길을 헤매는 동안(덕분)에 동네 골목을 구경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낯선 타인을 만나 길을 물을 수 있었다.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이들은 서로를 궁금해 하고 대화를 통해 낯선 이가 낯설지 않게 된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나는 이걸 했는데 좋았다. 너도 추천한다. 등의 질문을 주고받으며 낯선 이들의 궁금증을 풀어간다. 그래서 나는 낯선 이들과의 만남을 어려워하지 않고 판도라의 상자처럼 흥미로운 소재로 여길 수 있는 것 같다. 또한 우리는 서술자가 사막에서 헤매는 시간을 무작정 '외롭겠다. 막막하겠다.'라 감히 말할 수 없다. 서술자는 사막에 떨어진 덕분에! 사막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었으며, 어린왕자를 만나 자신의 그림을 이해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가와 피드백을 통해 성장하지만 평가는 내 기준이 아닌 타인의 기준에 맞춰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러한 환경은 내 입장보단 남의 의견을 우선시하게 되고, 기준을 내세워 그의 틀에 맞추려 노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어린왕자는 자신의 바운더리를 마음속에 내제 한 채 기준의 틀에 맞추는 게 아닌, 기출을 변형해가며 질문하고 답변하고 또 질문을 바꿔보는 모습을 보며 약간의 오바로 비춰질 수 있지만 진취적인 인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2. 마지막에 풀린 수수께끼? 아니면 내가 해결한 수수께끼

 

어린왕자가 지구해 도착해 사막을 거닐다 만난 건 다름 아닌 뱀이었다. 모든 질문의 답을 수수께끼로 답하는 뱀과의 대화의 끝자락에서 나는 의문을 느꼈다. 어린왕자는 왜 이쯤에서 질문을 멈추었을까? 이정도 질문에 그칠 어린왕자는 아닌데.. 생각했다. 이 의문을 뒤로한 채 마지막장 까지 읽어보니 내 스스로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다. <어린왕자>의 결말은 어린왕자가 다시 자신의 별로 돌아간다는. 즉 죽는 것으로 묘사된 점을 보아, 뱀이 너가 원할 때라면 언제든지 네 별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힌트가 아니었을까? 생각했고 순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뱀은 원할 때 언제든지 태어났던 별로 돌아가게 해준다고 말했다. 내가 원할 때라,, 당장 힘들고, 지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지금 나 좀 죽여줘라 확신에 차서 말할 사람은 적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왕자는 서술자를 한 동안 지켜봐오며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고, 많은 궁금증 중에서도 표면적인(겉으로 들어나는 평범하고도 쉬운) 질문을 많이 해왔다. 내 생각에 어린왕자는 표면적인 궁금증을 파고드는 반면, 내제적인 질문은 조심스러워 하는 것을 느꼈다. ‘이 말을 한 건 비밀이 있어서, 설명해주기는 어렵고도 복잡한질문들은 혼자 해결해내고 어쩌면 심오한 질문의 의미의 해석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상상력 또한 풍부한 인물로 표현된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영생할 수 없다는 것은 모두 알 고 있으며 종교의 차이에 따라 순환하거나, 환생한다고 말한다. 죽어서 별이 되고, 재가 되어 땅의 양분이 되기도 하고 바닷가를 유영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침내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결론에 다 달았다. 어린왕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고, 언젠가는 사막에서 우연히 서술자를 만났던 것처럼 다시 만나기 위한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게다가 서술자 또한 서로에 대한 우정과 배려는 상호작용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확신에 차 언젠가. 다음 생엔, 우연을 믿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만나고 싶은 서술자를 구해준 것 같기도 한다.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이 있다. 그 존재가 살아있건, 밤하늘의 별이 됐건 그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없을 만큼 힘이 되는 사람. 이 점에서 서술자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고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자신도 밤하늘의 별이 되면 만나겠거늘, 또는 지구의 순환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어린왕자를 만날 경우를 대비하여 어린왕자를 만나면 해야 할 일도 우리에게 맡겨 주었다.

 

3 때 있었던 일이다. 대학 수시 면접에서 통합 질문이 하나 있었다. ‘유토피아는 없지만 우리는 모두 유토피아를 꿈꾼다. 왜 우린 유토피아를 추구할까?’ 대충 이런 질문이었다. 모든 관계가 내 뜻대로 될 수 없는 만큼 약간의 망상과 허상은 결과를 아는(우리는 모두 죽는) 현실에서 조금은 더 재밌지 않나? 내가 다시 환생한다면, 너를 만나게 된다는 망상(어쩌면 소망)은 슬플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즐겁게 밤하늘의 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왕자는 서술자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나보다.

 


 

 

 

3. 장미꽃, 나의 세상에서 하나인데

 

B612에서 본 하나의 장미 꽃. 어린왕자는 그 꽃을 보며 바람을 막아주고, 유리 덮개를 씌어주며 각별하게 대해줬다. 하지만 그 꽃은 요망함을 담고 있었으며 어린왕자는 마침내 모두 관심에서 시작된 행동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같은 게 몇 백 개가 있더라도 그 중 내가 택한 나의 것에 더욱 의미를 두는 편이다. 많은 볼펜 중 에도 내가 고른 하나. 하다못해 마트 과일 진열대에 쌓인 오렌지 중 직접 고른 8개의 오렌지 같은 사소한 것들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몇 십 개 몇 백 개의 동일한 물건 중에서 나의 것을 찾아내는 것이 익숙했던 반면, 어린왕자의 별에서는 소수의 것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기억되는 것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에서 본 장미 밭에서 실망감이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로 특별하게 생각한 이가 어떤 곳에서는 특별한 존재가 되지 않을 때. 이 때 그 존재가 갖는 가치는 나로 인해 높아지고, 더욱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관찰한 어린왕자 또한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모든 걸 내 기준에서 해결하고 싶지 남의 의견까지 생각하고 해결하는 거에는 피로감을 느낀다. 하지만 어린왕자의 세상에서는. 적어도 B612에서 만난 요망한 꽃임에도 계속 생각나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어린왕자가 지구에 쌓이고 쌓인 장미가 아닌, 내가 아는 장미꽃, 내 세상에 하나뿐인 장미꽃에 집중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지구의 장미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4. 내가 어린왕자가 된 것 같다. 질문이 많아

 

어린왕자를 읽으며 서술자가 이면적으로 담고 있던 마음을 생각해보았다. 먼저 어린왕자는 B612에서 온 인물로 자신이 정의한 어른들의 기준이 확실하게 있는 인물로 표현됐다. 이러한 점을 미뤄보아 어린왕자는 서술자가 과거 되고 싶었던 이면적인 인물이 아닐까?’ 라는 가정을 할 수 있었다. 서술자는 어린왕자와 사막을 헤매며 진정 어린 시절 듣고 싶었던 말, 자신의 그림을 이해해 주는 첫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둘의 차이점은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들에게 쉽게 굴복했지만 어린왕자는 자신이 말하는 소위 어른의 바운더리를 구축해 자신의 의문을 소통으로 전환하여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태도를 보여줬고 강압적인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점에서 위에 제시한 가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이 되었다.

 

나 또한 서술자와 비슷한 사고방식과 교육을 받아온 사람으로서, 전에 읽었던 토드로즈의 <평균의 종말>이 생각났다. 우리가 주변에서 겪는 평범한 시대는 평균의 시대. 즉 평균의 시대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균 이하로 평가받아서는 안 된 다는 강박에 내몰린 사회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환경에서는 평균의 시대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평범한 것에서, 평범함에 특별함을 더한 것을 최고라 여겼기 때문에 우리는 어린왕자를 더욱이 특별한 인물로 생각하지 않나 싶다.

 

정말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더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어린왕자처럼 내 것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나.

아니면 이 두 개가 잘 조합되어야 할까.

나는 또 의문이 남는다.

 

 

 

 

 

 

참조

평균의 종말 서평 출처: 본인 tistory

https://sodayeong.tistory.com/10?category=857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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